엄상준

겨울_수성못

봄_달창저수지

여름_불로동고분군

겨울_수창맨션

겨울_앞산

봄_건들바위네거리

봄_금호강

봄_하중도

여름_신천

여름_칠성동

작가노트

낯선 이방인

대구는 나에게 낯선 장소였다.
대학교 1학년 여름, 친구들과 내일로 여행지로 잠시 들린 것 외에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딱히 방문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 말, 갑작스럽게 대구로 발령이 났고 2023년 1월 1일 서른 살의 시작을 낯선 장소에서 맞이하게 됐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의 생활이 비록 막막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다. 그건 아마 새로운 걸 즐기는 어쩔 수 없는 내 성정 때문일 것이다.

도착한 뒤 처음 한 달은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매주 주말 서울 집에 올라가서 짐들을 가져왔고 대구 집에는 새 가구를 들여놓느라 바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장소를 즐길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니까 또 심심해졌고 바로 그 시기부터 대구를 돌아다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유난히 추웠던 어느 주말, 처음 대구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을 갖고 관광지로 유명하다는 수성못을 찾아갔다.

사실 수성못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오리배들이 한가롭게 떠다니는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했으나 실상은 날이 추워 연못은 얼어있었고 덕분에 오리배들은 선착장에 묶여서 그저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추운 날씨 때문인지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쓸쓸하고 평범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별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좋아하게 되어버리는 그런 순간이. 2023년 2월 4일 늦은 오후, 수성못에서 보낸 시간이 그러했다.

얼어붙은 연못 위로 오리배 대신 걸어 다니는 거위들과 수성못이 언 모습을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조금 녹은 얼음 사이로 수줍게 빛나는 윤슬까지 특별할 건 없었지만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사진 속에 담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대구의 모습들을 담아보기로 했다. 모두가 아는 명소에서부터 대구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장소들까지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기록했다. 누군가 왜 그렇게 열심이었냐고 묻는다면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방인이 다시는 돌아오기 힘든 순간들을 붙잡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내 앨범엔 대구의 계절들이 차곡히 쌓이고 있었다.

겨울과 봄이 지나갔고 이제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고 있다. 각 계절을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미숙한 글솜씨가 도와주질 않았다. 그래서 열 장의 사진으로 대신 보여드리고자 한다. 낯선 이방인이 사랑했던 대구의 계절들과 그 속에서 그가 붙잡고 싶었던 순간들을.

2023.09.
엄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