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시간, 앞으로 남은 시간, 그런건 모두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단지, 옆에 머물러 있는 것 뿐이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 그 자리에 잠시 고요하게 멈추어 있을 뿐이다. 그저 ‘순간’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좋아한다. 그 어떤 ‘순간’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진을 찍는 게 아니다. 현재를 간직하고 싶다. 그 순간의 감정, 느낌, 시각 등 그 사진을 바라보면 나는 그 ‘순간’으로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찍은 사진은 나를 그 순간으로 살아가게 해준다.
내가 살아온 순간들은 마치 불규칙한 조각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사진을 통해서 퍼즐의 조각들을 보다 명확하게 바라보고자 한다. 하나의 퍼즐을 맞추듯 나의 조각나 있는 기억들을 하나의 큰 퍼즐로 만들어내고 싶었다.
사진은 나에게 작은 문이었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 나를 성찰시키는 작은 문, 작은 문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더 앞으로 진일보 할 수 있는 힌트를 내게 준다. 시간은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지만 사진은 그 시간에 흔적을 남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 테 어우러져 내 안의 작은 호수를 만들어낸다.
- 2023.09. 허용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