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내딛다

지나가다

이르다

잊다

덤벼들다

거닐다

넘어가다

돌아가다

두근거리다

잃다

작가노트

‘순간’

7월의 뜨겁고 습한 여름날이었다.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를 따라 달려 높은 곳으로 올라왔을 때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 꼬이고 단단하게 자리 잡았던 잡생각들은 잠시동안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린 느낌이었다. 팬데믹 이후 오랜만의 해외여행은 매일 같은 궤적을 돌던 나의 일상에서 오랜만의 일탈이었다.

고도를 오르내리며 먹먹함의 연속이였던 내 몸은 마침내 낯선 도시에 발을 내디뎠다.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맑은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나는 설렘에 취해 체감온도 45°라는 날씨에도 일순간 불평 없는 인간이 되었다.

뜨거운 열기가 나를 녹여버리기 직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고 얼른 물로 뛰어 들어갔다. 땀에 푹 젖은 몸을 시원한 물에 적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배속은 허기지기 시작했다. 물에서 뛰쳐나와 머리를 말리고 밥을 먹은 후 여행으로 피곤해진 몸을 눕힌 혔다. 오랜만에 잡 생각에 빠지지 않고 잠에 들 수 있었다.

1
다음날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평소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이른 아침 바닷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평소와 같이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충동적으로 서핑 강습을 예약하게 되었다. 수영도 못하는 나에게 서핑이란 새로운 도전이었다. 머릿속까지 바닷물로 절여질 때쯤 처음으로 파도와 친해지기를 성공했다.

물놀이를 끝낸 후 시장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길을 걷다 무더위에 택시를 불렀지만, 근처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택시가 너무 잡히지 않았다. 겨우 잡은 택시를 올라타려는데 한 남성이 우리를 붙잡고 계속 말을 걸었다. 그 남성은 우리처럼 택시를 잡지 못한 관광객이었고 우리는 혹시 모를 위험에 경계했다. 기사님께 허락을 구한 후 같이 동승해서 같은 시장을 가게 되었다. 베트남 택시에서 한국, 일본, 베트남 3개 국가의 사람이 영어로 자신의 나라에 관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는 정말 우습고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에 도착한 뒤 우리는 각자의 장소로 다시 흩어졌지만 찰나의 순간에 기억되는 추억 중 하나가 되었다.

다시 지도를 보며 걸음을 나섰지만 길을 잃어 수풀 속을 헤매게 되었다.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흙길이 난 곳을 걸었다. 겨우 나온 길목의 끝에는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집을 볼 수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길목이 나를 예상지 못한 장소에 이를 수 있게 도와주었다.

2
우리에겐 평범한 일상이었을 수도 있을 그 순간이, 누군가에겐 신선한 행복으로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갈 지 예측할 수 없다. 정말 평범하게 흘러갈 수 있었을 순간들도 우리의 생각 하나, 작은 행동 하나로 평소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고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항상 고민해본다.

마지막으로 저의 이 일기와도 같은 글과 사진들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평범하게 지나갈 수 있는 똑같은 시간들도 행복했던 추억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순간을 만끽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2023.09.
김혜원